김영하 작가의 <랄랄라 하우스>에서였나.
여행을 할 때 그 여행지에 관한 소설을 읽는 것만큼 이상적인 책읽기도 없다고.
그 때 무릎을 탁 치며, 나중에 쿠바여행의 기회가 생긴다면 <라틴화첩기행>이란 책을 꼭 가져가서 읽어야지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무래도 좋을 그림> 이라는 책을 읽으며 다음 여행에는 스마트폰 대신 스케치할 수 있는 도구를 챙겨가보면 어떨까 하는 용감한 생각과 함께 나의 10년 전 유럽여행의 풍경이 떠올랐다.
그 때는 그게 유행이었는지 몰라도, 유럽 여행을 하며 매일 일기를 쓰고, 영수증을 풀로 붙이고. 국경을 넘는 쿠셋 밤 열차 안에서도 밀린 방학 숙제를 하는 꼬마처럼 일기에 매달렸었다. 감상보다는 그 날의 일정에 대한 나열에 불과했는데, 지금껏 두어번 들춰본 게 다인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행이란 건 그 날 어디에 가서 무얼봤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에 무엇을 담아 왔는지가 중요한 거니까.
여행이 단지 체험이 아니라 소중한 경험으로 축적되려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문화와 풍경들에 대한 충분한 소화가 필요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여러번 풍경을 보고 또 봐야만 가능한 스케치의 방법이 정말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책이 짧은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모여 있음에도 책읽기가 더딘 건, 에피소드 하나를 읽으면서 내가 했던 여행과 그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떠올라 다음 페이지로 막 넘겨지지가 않기 때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이란 게 원래 그런 식으로 서로 만날 일 없던 것들이 만나가는 이야기의 축적"이라고.
정말.
내가 프랑스에서, 그것도 몽마르뜨 언덕 위에서 개그맨 남희석을 만날 줄 누가 알았냐고. 이태리 스페인 계단에서 배우 루시 리우를 만날 줄 누가 알았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