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고종석의 언어학 강의이다. 그로 인해 한국어에 대한 애착이 좀 더 심해졌다. 2015년 3월 한 달 동안 '벙커1'에서 '말하는 인간(호모 로퀜스)'라는 제목으로 4번 강의한 내용을 엮었다. 강의 녹취록을 풀은 탓으로 설명이 다소 장황하거나 어색한 문장이 눈에 띈다. 구어체이니만큼 술술 읽히는 건 장점이다. 제목에 '불손한'이라는 표현이 왜 들어갔는지 매우 궁금했다. 평소 고상하고 순수한 우리 말을 소개하다 이제는 과격하거나 험한 말을 펼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쓸데없는 기우였다. 한국어는 예로부터 중국어, 일본어, 영어에 감염되어왔기 때문에 순수하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 문화 역시 서양 문화에 감염되어 순수성이 떨어진다. 결국, 언어와 문화에서 우리는 불순한 까닭에 세상에 대해 너그러울 수 있는 자세를 갖춘 셈이다. 1984년 노비제 폐지까지 조선 사람의 거의 반은 노예였다. 우리는 대부분 노예의 피가 섞인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순수하지 못한 무언가에 감염된 존재이기에 사회적 소수자들이나 외국인 이주자들 등에게 야박하게 굴어야 할 이유가 없다. 정말 위험한 것은 불순한 게 아니라 순수한 것이다. 억압적 사회는 강제로 사람들을 순수하게 만들려고 애를 쓴다. 북한을 보면 수긍이 간다. 이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고 그 불순한 언어들의 세상을 들여다본다.
언어는 생각의 감옥인지 1장에서 언어의 생성과 세계를 살핀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를 입에서 나오는 물리적 실체 언어(파롤)와 머릿속에 추상화된 심리적 실체 언어(랑그)로 구분한다. 언어학의 주대상은 뜻(시니피에)과 청각영상(시니피앙)으로 구성된 랑그이다. 연속적인 세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에 언어는 불연속적이다. 무지개를 언어로는 불연속적인 각각의 색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 언어는 실체가 아닌 형식이다. 세계가 만들어진 이후에 언어는 탄생한다. 세계가 먼저 언어를 규정하고 구속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상호 규정 및 구속을 하기도 한다.
2장에서는 각 언어들이 어떻게 서로 섞이고 스며드는지 설명한다. 방대한 저자의 언어학적 지식 자랑이 이어진다. 인종이나 나라에 따른 구분에 의해 언어도 나누어져 있지만, 서로 인접한 언어들끼리의 융합과 때로는 독립적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실제 하지 않지만 다중언어 사회인 멀티링구얼리즘, 다중 언어 중 유리한 언어가 존재하는 폴리글로시아, 2개 언어를 공식 사용하는 바이링구얼리즘이나 다이글로시아 등의 설명이 흥미롭다. 낱말을 다른 두 언어로 섞어 사용하는 코드 스위칭 혹은 코드 믹싱은 두 언어의 정체성을 강하게 의식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한다.
마지막 장은 번역에 대한 저자만의 생각을 던진다. 상당히 많은 자연언어가 문자언어로 정착될 때, 최초의 문헌들은 대개 번역문이었다. 이탈리어 속담에 '번역자는 반역자'라는 말이 있듯이 대부분의 번역은 의역을 말한다. 모든 번역이 의역인 한, 번역 과정에서 의미와 형식이 변할 수밖에 없음으로 번역된 텍스트의 저자는 번역자로 볼 수 있다. 그 번역자는 원저자를 표절한 것이다. 번역이 많이 일어나는 시기는 대체로 문화적 활성기였다. 앞선 개방으로 인한, 끈질긴 국민성과 학문탐구에 대한 열정까지 겸비한 일본이 번역에서 보인 놀라운 심미안이 오늘의 일본을 만든 것으로 보여 씁쓸한 맛이 입안에 도는 건 어쩔 수 없다.
저자의 여러 저술들을 접하면서 한국어에 대한, 언어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애정을 갖게된 점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 빛나는 분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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