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현실을 만드는 레시피 - 로런스 부시 지음
이 책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삶이, 우리 자신이 주인이 되는 선택과 결정으로 이루어진 무엇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확신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저자 Lawrence Busch는 그런 바람직한 삶을 위협하는 잠재적 요소 중 하나로 ‘표준’을 주목하는데, 이는 우리 삶을 구성하는 모든 선택이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결정’과 ‘표준(을 비롯한 일상적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준에 대한 검토는 이성의 합리적 결정에 대한 연구 못지 않게 우리 삶의 주체성을 확보하는데 의미있는 것이다.
이 책을 찬찬히 정독한다면 누구나, 최소한, 저자의 그런 문제의식은 동의하리라 생각할만큼 설득력있게 쓰여진 책이다. 또한, 개인의 존엄이 삶 안에서 각자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선택할 자유의 확보를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무척 가치있는 문제제기와 생각할 거리로 가득차 있다.
저자는 표준이 ‘계측된 비교’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계측’이 필요하게 된 역사와 그 계측된 결과가 비교되어야 하는 이유를, 다양
한 사례를 통해 논하고 있다. 이 책은, ‘표준’이 어떻게 인간에 의해 도출되는지 그 도출과정의 인지심리학적, 인식론적 측면을 다
루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사회현상으로서의 표준이 설정되는 상황과 그 안에서 ‘드러나는 현실’을 검토한다. 각각의 검토 내용은
읽는 이에게 일종의 내적 토론거리를 제공하는데 단순한 관련정보와 연대만으로 끝나지 않고 간단하게라도 그 맥락을 소개하는
덕택에 꽤 흥미로운 내적 토론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자신의 ‘바람직한 삶’에 대한 관점을 은근히 숨기고 책 말미의 논쟁을 위해 각종 문제점들을 침착하고도 꽤 치밀하게 정리
하여 소개한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 관점이 민주주의의 구현과 어떻게 어긋나는지 보여줌으로써 신자유주의가 인간 존엄을 해
칠 수 있는 ‘표준화한 차별화’에 기여한다는 ‘역사적 필연’에 대한 논증의 포괄적이고 치밀한 구성은, 의견에 대한 동의여부를 떠나,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또 하나의 큰 주제인 Tripartite Standards Regime을 구성하는 표준, 증명, 인증에 대해, 그 구조가 ‘전
문성에 대한 우리의 맹목적 신뢰’에 의해 강화되는 새로운 폭력체제로 드러나기도 한다는 논증도 독자로 하여금 긴박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 책이 주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표준’과 ‘나 자신이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와의 관련성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지식이 커짐에 따라 더 깊어지는 현실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이익과 위협에 대해 실제적이고도 철학적
인 논의가 가능하도록 구체적이지만 깊이있는 고민거리를 끄집어낸 점도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자기 삶의 무언가, 작은 것 하나
라도 스스로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내 삶의 주인이 되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피하기 어려운 질문을 소
개하는 책이라고 추천한다.